존경하는 사람의 글에서 제 이력서를 읽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얼마 전 폴 그레이엄이 'The Brand Age'라는 에세이를 올렸어요. 스위스 시계 산업이 어떻게 정밀 기계의 세계에서 명품 브랜드의 세계로 넘어갔는지를 추적하는 글인데, 저는 읽는 내내 시계 생각을 못 했습니다. 자꾸 제 지난 몇 년이 겹쳐 보였거든요.
시계공들에게 일어난 일
에세이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1945년부터 1970년까지 스위스 시계는 황금기를 보냈습니다. 시계공들이 다투던 것은 두 가지, 얇기와 정확도였어요. 손목에 차고 다니며 시간을 아는 물건이니, 더 얇게 만들거나 시간을 더 잘 맞추거나. 본질에서 경쟁하던 시대였죠.
1970년대 초에 재앙이 세 겹으로 덮칩니다. 일본이 더 싸고 더 좋은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고, 고정환율제가 무너지며 스위스 시계 값이 미국인 기준 2.7배로 뛰었고, 결정타로 쿼츠가 나왔습니다. 정확한 시간이라는, 비쌌던 것이 공짜가 된 거예요. 10년 사이 판매량이 3분의 2가 사라졌습니다.
여기서 두 갈래 길이 나옵니다. 오메가는 시계공 중의 시계공, 너드 중의 너드였습니다. 일본이 따라붙자 오메가답게 응수했어요. 더 정확한 무브먼트를 만들자. 1968년에 진동수를 45% 올린 무브먼트를 내놨는데, 너무 예민해서 오히려 신뢰를 잃었고, 그 길 끝에는 바닥까지 내려가는 가격 경쟁뿐이었습니다. 1981년에 채권단에 넘어갔어요.
파텍 필립은 반대로 갔습니다. 오메가가 무브먼트를 다시 설계하는 동안 파텍은 케이스를 설계했어요. 황금기의 고급 시계는 다 비슷하게 생겨서, 몇 센티 앞까지 다가가야 어느 회사 것인지 알 수 있었거든요. 케이스를 눈에 띄게 만드는 순간 시계 전체가 브랜드의 표현이 됩니다. 폴 그레이엄의 계산으로는 브랜드의 면적이 8제곱밀리미터에서 800제곱밀리미터가 된 거죠. 그렇게 살아남은 회사들이 지금의 명품 시계 산업이 됐습니다. 정밀함을 팔던 산업이 비싸다는 사실 자체를 파는 산업이 된 거예요.
에세이의 뼈대는 한 문장입니다. 브랜드란 제품 사이의 실질적인 차이가 사라졌을 때 남는 것이다. 그리고 기술은 본래 그 차이를 지우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니 시계에서 일어난 일은 어디서든 다시 일어난다는 거죠.
나에게 일어난 일
저는 이 이야기를 두 번 겪었습니다. 관전자로서가 아니라요.
'하이퍼커뮤니티'는 실시간 번역이 들어간 위치기반 소셜 커뮤니티 서비스였습니다. 언어가 달라도 같은 방에서 대화하는 경험, 그때는 그게 실질적인 차이였어요. 저는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 조금이라도 투자를 받아서 빨리 런칭하고, 단계적으로 키우면서 미리 시장에 자리를 잡자고. 하지만 저는 결정권자가 아니었고, 서비스는 제 시간표대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실시간 번역은 LLM 시대의 부품이 됐죠. 쿼츠가 정확한 시간을 공짜로 만든 것처럼요.
'Quickstart.id'는 인증과 인가를 다루는 서비스입니다. 개발자라면 누구나 아는, 매번 다시 만들기 싫은 그 문제요. 요즘 한국 여기저기서 인증·인가 사고가 터지면서 다들 이 문제의 무게를 새로 깨닫고 있습니다. 시장이 이제야 눈을 뜨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하이퍼커뮤니티에 시간을 너무 오래 쓴 뒤에야 이 문제로 돌아왔습니다. 세상에는 이미 같은 문제를 파는 크고 잘하는 회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요.
늦게 도착한 사람 앞에는 오메가의 길이 놓입니다. 더 잘 만들어서 이기자. 그런데 에세이를 읽으며 알게 된 건, 제가 그 길에 서고 싶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곡괭이와 청바지
제가 원했던 건 이기는 게 아니었어요. 금광에서 곡괭이와 청바지를 팔고 싶었던 겁니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규모와 기술로 싸우는 그림이 아니라, 러시가 시작될 때 광부들에게 도구를 파는 자리. 그 자리는 싸워서 얻는 자리가 아니라 먼저 도착해서 얻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빨리 나가자고 했던 거고요.
폴 그레이엄은 브랜드와 좋은 설계가 양립하는 경우가 딱 두 가지라고 씁니다. 그림처럼 가능성의 공간이 아주 넓거나, 아무도 밟지 않은 땅에 먼저 도착하거나. 먼저 도착한 사람은 정답을 찾는 일과 그 정답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을 한 동작으로 합니다. 곡괭이 장수의 자리가 정확히 그 자리예요.
청바지 쪽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생각해 보면 더 재밌습니다. 골드러시에서 금을 캔 사람들의 이름은 남지 않았지만, 광부들에게 바지를 팔던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지금도 모두가 아는 이름이죠. 에세이는 브랜드를 사지도 팔지도 말라고 하는데, 그 시절의 리바이스는 브랜드를 판 게 아니었습니다. 러시의 초입에서 진짜 필요한 물건을 팔았고, 브랜드는 부산물로 따라왔어요. 브랜드를 만들려고 하면 파텍의 길이 되고, 필요한 것을 만들다 보면 어느 날 이름이 남는 겁니다. 저는 후자를 원했던 거예요.
여운
그래서 지금은 어떠냐고 물으면, 저는 아직도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말을 속으로 합니다. 한국 시장은 이제야 인증·인가에 눈을 뜨고 있으니까, 계산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이 에세이를 읽고 나서는 그 말의 정체를 알겠더라고요. 그건 계획이 아니라 시작하지 못한 사람의 여운입니다. 지금 시작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지금 시작하면 그건 곡괭이 장수의 자리가 아니라, 자리 잡은 회사들과 벌이는 규모와 기술의 싸움입니다. 제가 원하던 그림이 아니에요. 폴 그레이엄은 흐름이 반대일 때 좋은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지금도 정직하게 시계를 만드는 독립 시계공들이 보여준다고 각주에 적었는데, 그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에세이는 이렇게 끝납니다. 황금기는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흥미로운 문제를 따라가다 보면 나중에 그 시절이 그렇게 불리는 거라고. 당대에는 이름도 없다고요.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놓친 러시를 곱씹는 게 아니라, 다음 문제를 따라가는 일이겠죠. 러시는 언제나 문제가 있는 곳에서 시작되니까요. 두 번 늦어본 저는 그 자리가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압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결정권이 제게 있습니다.

quickstart.id로 로그인